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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2-03-05 (월)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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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間 (인+간)] 경주 자연의원 원장 조병식

[人+間 (인+간)] 경주 자연의원 원장 조병식  
현대의학 한계에 가슴 친 의사 도심 병원 문닫고 산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7년…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선택한 이들에겐 어떤 특별함이 있을까. 현대의학의 한계에 가슴을 치고는 '산으로 간 의사'가 있다고 했다. 번듯한 병원에서 하얀 가운을 걸치고 앉은 모습을 누구나 부러워할 텐데, 대체 왜? 그이는 산속 모텔을 개조해 작은 의원을 한다. 좀 떨어진 곳에 황토방 집들도 지어놓았다. 지난해 말 조촐한 개소식을 한 '경주 치유마을'이다. 그리곤 현대의학이 두 손 들어버린 사람들과 함께 밥을 먹고, 산을 타고, 웃고 떠들다 눈물도 짓는 삶을 이어가고 있다. 이름도 낯선 '통합의학'을 몸소 실현하고 있는 사람. 자연의원 조병식(49) 원장이다.


조 원장이 추구하는 통합의학은 서양의학에 자연의학, 한의학을 접목한다. 또 다양한 '민족 의학'에 면역력을 높이는 명상수련까지 더한 의료의 종합선물세트다.

■ 자연은 지상 최고의 힐링 시스템
 
그를 만나러 가는 길은 꽤 멀었다. 부산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서울산IC를 빠져나와 경주로 가는 굽이진 길을 한참 달렸다. 경북 경주시 산내면 내일리. 자연의원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낡은 다리를 건너니 의원 앞에 작은 계곡이 흐르고, 산이 사방으로 둘러섰다.
 
자연의원에서 다시 산속으로 4㎞가량 들어갔다. 숲속의원과 한의원 등 자연치유센터가 있는 치유마을이 나왔다. 자연의원에서 21일짜리 해독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이를 마친 이들이 치유마을로 들어와 항암면역·자연생활 프로그램을 따라 생활하고 있었다. 의사와 한의사까지 모두 3명의 의료진에 직원 20여 명이 50명 안팎의 환우들과 프로그램 관리를 맡고 있었다.
 
수줍은 웃음을 입가에 머금은 그가 반긴다. 선하되 단단한 느낌이다. 마을 산책길을 다박다박 함께 걸었다.
 
짧은 만남이라 시간을 아껴야 한다. 이런저런 질문을 퍼부었더니, 조용하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검사 수치로 보면 별 이상이 없는데, 계속 아프다고 합디다. 증상을 묻고 약물을 처방해 주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그의 말을 요약하자면, 조 원장은 지난 2000년 부산 사상구에서 개원을 했다. 사회활동을 하느라 동기들보다 한참 늦은 것이었는데, 노동자나 서민이 많은 공단지역을 택했다. 돈이 될 리 없었다. 하루에 40명 남짓한 환자들은 아토피 고혈압 간경화 등 만성질환, 난치병을 많이 앓았다. 개원 전 10년간 진료 경험을 쌓았는 데도 답이 없었다. 육체적 치료에만 치중한 반쪽이었다. 환자들은 평생 약이 아니라 독을 먹고 있었다. '2~3분 얼굴 보고 증상 완화만 하는 이런 진료가 무슨 의미가 있나.' 회의감이 밀려왔다.
 
조 원장은 그때부터 대체의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단식과 생식, 풍욕 등 궁금한 것을 묻고 배우기 위해 직접 사람들을 찾아다녔다.
 
2년 뒤 '난치병 클리닉'을 열었더니, 전국에서 환자들이 찾아왔다. "클리닉 환자의 절반이 암을 앓았어요. 병은 주로 잘못된 생활습관과 식생활, 정신적인 게 원인입니다. 식이요법과 면역요법 해독요법을 병행했더니 좋아지는 분들이 나타났습니다."
 
목소리가 조금씩 들떴다. "첫 암 환자가 유방암 3기 였어요. 부분절제술을 했지만 림프로 9군데나 전이됐고, 항암치료 부작용이 있었죠. 자연치료를 병행했더니 6개월 만에 암 세포가 사라진 겁니다. 다 완치시킬 순 없지만, 덕분에 자신감과 용기가 생겼지요."
 
하지만 병원에서 환자들과 10분이고 20분이고 이야기를 나누며 운동을 시키고 생활습관을 고치려 해도 한계가 있었다.


■ 마법의 주문, '사랑합니다 용서하세요'
 
그때 조 원장은 특이한 점을 포착했다. 산에서 생활한 말기암 환자들이 병을 극복한 사례가 많다는 사실이었다. '그래 산으로 가자!' 자연으로의 탈출은 모험의 연속이었다.
 
빚을 내서 경남 양산시 원동면 배내골 입구 인근의 주택 한 채를 빌렸다. 동생이 사무장을 맡고, 기수련 사범과 간호사 등 4명이 말기암 환자 7명으로 시작했다. '자연의원'의 탄생이었다.
 
거동이 힘든 응급실 수준의 환자들이라 고생이 심했지만 이래저래 입소문이 나면서 환자가 늘기 시작했다. 의원 근처에 집을 빌려 지내는 사람도 있었다. 조 원장은  6개월을 헤맨 끝에 경주에서 조건에 맞는 자리를 찾았다.
 
"신기한 것은 그렇게 찾아다니던 기인들이 자연의원을 열고 나니 스스로 찾아오시는 겁니다. 그분들에게 한 수 배우는 것이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만난 산야초 전문가인 심마니와는 의형제가 됐다.
 
"사랑합니다. 미안합니다. 용서하세요. 감사합니다." 치유마을 사람들이 매일 몇 번이고 외는 '치유와 행복을 이루는 주문'이라 했다.
 


■ 부산 사나이, 정의를 말하다
 
이윽고 마을 식당으로 갔다. 점심은 잡곡이 가득한 현미밥에 초콩 청국장 아마씨가루 등 채소가 가득한 자연식이다. 물은 약재를 끓인 항암차다. 가끔 닭가슴살 흰살생선 다슬기탕으로 단백질을 보충한다. 최근에는 '경주약선 영농법인'을 만들어 오염되지 않은 식재료를 공급받고 있다고 한다. "1만㎡ 규모를 경작하는데, '로컬푸드' 형태로 주민과 소통하고 지역경제에도 도움을 줘서 잘한 일인 것 같아요. 말 그대로 행복한 공동체 생활이에요. 병을 이겨내는 데 서로 힘이 되지요."



점심을 함께 드는 '환우'들은 환자복이 아닌 등산복, 운동복 차림이다. "진짜 맛 있어요. 고기 술 이제 안 먹어, 허허." 한 중년 환우의 자랑이 대단하다. 함께 웃고 떠드는 이들의 표정을 보고 누가 말기암 환자들이라 말할까.
 
현미밥을 씹으며 듣는 그의 옛 이야기는 차라리 한편의 드라마였다.
 
조 원장은 넉넉하지 않은 집안의 장남으로 세상에 나왔다. 1964년생 용띠다. 학창시절엔 한마디로 '모범생'이었다. 외항선을 타신 아버지로 인해 어머니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었다. 해운대 백사장에서 소주를 마신 일은 '대단한 일탈'이었다.
 
"제 적성은 확실히 문학과 철학이었어요. 하지만 어머니께서 바라시는 대로 의대를 갔습니다. 학교에서 엄청 고생을 했지요."
 
다들 그랬듯이, 그도 대학에서 세상에 눈을 떴다. 몇 해 전 광주에서 민주화운동이 있었고, 학교 안에는 늘 경찰이 있었다.
 
조 원장은 의대 학생회 활동을 하며 의대 극예술연구회에서 연극도 했다. 그러다 본과 1학년 때 사건이 일어난다. 사회성이 강한 연극을 연출했는데, 대본 검열에서 난리가 났다. 지도교수가 난색을 표했다. "수정한 대본을 학교에 내고는 실제 공연은 원본대로 해 버렸어요. 서슬 퍼런 1985년이었으니, 바로 요주의 인물로 찍힌거죠."
 
1987년, 6월 항쟁 때 의대 학생회 기획부장으로 부산대 의대 최초의 수업·시험거부를 주도했다. 의대생들은 거리에서 적십자 깃발 아래 흰 가운을 입고 다친 이들을 치료했다. 학원민주화 투쟁으로 경찰에 세 번 끌려갔다. 어딘지 모를 곳의 고문실로 끌려가 협박을 당하기도 했다.
 
한번 유급되면서 졸업한 뒤에도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인턴시험을 치른 병원에서 성적이 충분했지만 떨어뜨렸다. 졸업한 뒤에 뵌 교수님은 '니, 정말 빨갱이가?'라고 물으시기도 했다.
  
 
부산대 의대 졸업 기념 촬영을 하고, 교내 집회와 의료봉사 활동에 참가한 조병식 원장.


■의사이자 시민운동가로
 
조 원장은 곧장 공중보건의가 됐다. 1990년이었다. "졸업은 했지만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일하는 사람의 건강을 위한 의사회(일건의)'를 만들었습니다." 동기들 위주로 20여 명이 참여한 '일건의'에서 사무국장을 맡고, 노동자들의 산업재해 직업병 조사와 같은 학술 활동을 시작했다.
 
"카드뮴에 중독된 노동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인정을 하지 않았어요. '한 번도 발생한 적이 없다'는 정치적인 판단이었습니다. 결국 2년 만에 처음으로 법원에서 산업재해로 인정을 받게 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어요."
 
일건의는 자연스레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인의협) 부산경남지부'가 됐다. 그는 인의협 사무국장으로 5년간 일했다. 20여 명이던 회원이 300명 수준으로 늘었다. 공중보건의를 마친 조 원장은 보건소에서 의무사무관으로 일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의료보험제도를 개혁하고 노숙자와 외국인노동자를 진료하는 일로 바빴다.
 
해운대보건소 반송지소장으로 일하면서 남들이 하지 않던 '방문 진료'란 것을 시작했다. "직원들이 '왜 피곤하게 그러시냐'고 불만이었지요. 박봉이었지만 소외계층을 위해 보건행정을 바꾸는 데 평생을 바쳐야 겠다는 생각을 할 때였어요." 하지만 꿈은 오래가지 않았다. 또 '찍힌' 것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을 단죄하기 위해 인의협에서 '역사 바로세우기 서명운동'을 했는데, 공무원이 정치활동을 한 게 문제가 됐다. 정보과 형사들이 드나들고, 시청에서 각서를 요구했다. 분연히 사표를 던졌다.
 
요양병원 등에서 일하며 의약분업을 주도한 것이 제대로 풀리지 않으면서 인의협을 후배들에게 물려줬다. 의료계의 돌팔매로 인의협 회원은 50명 수준이 됐다. 대다수가 찬성해 시작했던 일이 '밥그릇 싸움'으로 변질됐다. 


■'지랄 치료'하는 의사
 
조 원장은 한참 말이 없었다. 산에 와서 제일 기억에 남는 일이 뭐냐고 물었더니 그랬다. "아이들을 보내야 했을 때죠. 몇 달씩 같이 지내면서 정이 들었는데 그렇게 떠나니까 가슴에 참 많이 남아요. 너무 늦게 찾아왔어요." 10대 중반, 한창 필 나이인 아이들은 소아암을 앓았다. 다녀간 숫자만 열 명이 넘는다. 그는 "처음에 문상을 갔지만 이젠 가지 않는다"고 했다.
 
조 원장은 지금도 적자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한다. 마을을 만들면서 또 빚을 졌고, 건축비가 없어 비용 절반을 천천히 갚기로 했다. 지난해 말에는 심각하게 개인회생 신청을 할까 고민했다. 마을에 강당과 사무실이 필요하지만 엄두를 못 내고 있다.
 
이달 중순이면 그는 2010년에 이어 두 번째 책을 낸다. '조병식 원장의 자연치유 2권'이다. 책에는 통합의료로 병을 이겨낸 11명의 이야기가 포함된다. 1년 시한부를 선고받았던 50대 한 분은 퇴원한 지 4년이 넘어서 환우회 회장을 맡고 있다.
 
세상이 바뀌어 대체의학, 자연의학이 많이 알려졌지만, 의료계의 인식은 여전하다고 한다. 초창기에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실사를 나온 이후로는 혈액검사 등을 제외하고는 보험 인정을 해 주지 않고 있다.
 
"한번은 환우 중 한분이 친구인 의사에게 자연의원에 대해 얘기했답니다. 친구가 '지랄하고 있네!'라고 했다고 하더군요." 졸지에 그는 '지랄 치료'하는 의사가 됐다.
 
"7년 동안 산에서 환자 1천700명을 보았습니다. 자연 치유는 미신이 아니라 과학입니다. 마을에 계신 분들 표정 보셨지요. 이게 맞는 길이라 확신합니다. OECD 국가 중 자연의학 관련 법이 없는 건 한국이 유일하고, 독일이나 일본 중국에선  통합의학이 발전하고 있습니다. 눈앞의 이익만 생각할 게 아니라, 이제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조 원장은 조만간 새로운 자연의학 학회를 만들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뜻이 맞는 의료인들과 함께 첫 준비모임을 곧 열 참이다. 어쨌든 자연이 최상의 치료제이며, 자연 치유에 길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글=박세익 기자 사진=김병집 기자

조 원장이 권하는 건강법

영양 불균형과 불규칙한 식사, 직장일 등으로 오는 정신적 스트레스, 운동 부족이 만병의 근원입니다. 당연한 이야기라고요? 알면서도 방치하면 결국 일찍 목숨을 잃는 겁니다.
 
자연의원에 오신 분들에게 저는 '무조건 3개월만 쉬시라'고 권합니다. 우리 몸 안에는 100명의 의사가 있어요. 이들이 좋은 공기와 물 햇빛 소금 음식을 만나 자연 치유를 할 수 있게 여유를 줘야 합니다.
 
활성산소와 오염물질로 인해 우리 몸은 늙고 병들어 암세포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현미밥 잡곡밥으로 가능하면 채식 위주로 적게 드시고, 30분이라도 땀을 흘리는 운동을 하세요. 그래야 기혈 순환이 되고 면역력을 올릴 수 있습니다. 말은 쉽지만 실천하는 건 어렵습니다.
 
스트레스가 문제지요?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편안하고 즐거운 마음을 가지려 노력하는 겁니다. 운동으로 108배를 하면 마음이 정갈해지고, 좋은 운동이 됩니다. 걷기명상이나 기수련 등 명상도 좋습니다.
 
사람 몸은 조화를 이뤄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육체는 해독요법과 식이요법, 기운은 기체조나 단전호흡, 정신은 정신요법이나 명상으로 다스리면 됩니다. 그러면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3쾌'로 건강한 생활을 누릴 수 있습니다.

약력
1964년 경남 마산에서 태어남.  개금초등-개성중-해운대고 졸업
1983년 부산대 의대 입학. 학생회 및 극예술연구회 활동
1990년 공중보건의. '일하는 사람의 건강한 위한 의사회' 창립
1993년 보건소 의무사무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부산경남지부' 사무국장
2000년 부산 사상구에서 개원
2005년 양산 원동면에 '자연의원' 개원
2007년 경주 산내면으로 이전
2011년 경주약선 영농법인 출범. 자연치유센터 및 경주 치유마을 개소 [2012.3.2 부산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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